기원전 281년에 있었던 연(燕)나라 장수 진개의 진격은 한반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첫 째로 고조선 세력의 후퇴이다. 요동지역과 한반도 북부까지로 추정되던 고조선의 세력은 크게 위축되었다.
두 번째로 세형동검문화의 확산이다.
그 때까지 비파형동검과 민무늬토기로 대표되는 한반도 문명은 진개와의 전투 후에 세형동검문화로 급발진하였다.
세 번째로 예맥족의 확산이다.
고조선의 혈통은 일부 지배층(환웅세력)을 제외하면 예족(호랑이 숭배)와 맥족(곰 숭배)의 혼합으로 해석하고 있다.
예맥족의 대이동은 고조선의 멸망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진개 장수에게 얻어 맞았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고조선 세력이 후퇴하고 난 만주 지방에는 부여가 생겼다.
그리고 일부는 평안도로 가지 않고 배를 타고 한반도의 충청도나 전라도로 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고학적 근거)
이주민들이 도착했을 때는 벌써 거기 사람이 살고 있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장 멀리까지 온 사람들은 산이 많은 강원도와 동쪽보다는 평야와 강이 발달한 서쪽과 남쪽에 사람들이 많이 살았을 것이다.
서고동저의 한반도 지형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그들은 한(韓)족으로 불리는 사람들로 예맥족과 함께 우리 민족을 이루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지금의 국호가 대한민국이다.
중국과 무역도 하고 싸움도 했던 고조선의 예맥족들은 씨족 사회 수준이었던 한족보다 훨씬 앞선 문화와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사회는 크게 변하여 군장국가로 변하기 시작했을 것이고, 기록에는 없지만 예맥족이 지배 계급이 되고 권력을 잡았을 것이다.
시간이 100년 가까이 흘러 한반도의 한강 이남에 많은 군장국가들이 세워지고 연맹을 맺으면서 중국이라는 나라와 거래도 해봤다.
멀리서 들려오는 소문에는 중국에 무식한 놈이 나타나서 천하를 통일하고 사람들을 엄청 부려먹는다는 것이었다.
이 무렵, 북쪽에서 옷차림이 화려한 사람들이 대거 내려왔다.
그들은 신들이 그 유명한 '고조선'의 왕이었었다고 했다. (과거 완료형을 썼을 것이다.)
위만이라고 하는 나쁜 놈의 시키가 배신을 하고 왕을 빼았었다며 넋두리를 늘어놓더니 여기서도 왕을 해야겠다는 것이다. (이 사건을 중국 사료에서 '준이 쫓겨나 한왕되다'로 기록하면서 한(韓)이라는 국가가 역사에 처음 등장한다.)
준이 고조선 왕에서 한왕으로 경력채용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북쪽에서 내려왔다.
이번에는 진시황이 무서워서 도망온 사람들이었다. 잡히면 무조건 끌려가 성을 쌓거나 궁을 짓거나 무덤을 만들어야 했다고 토로했다.
그 사람들은 남쪽 해안가로 가서 또 왕 노릇했다.
이주민들은 모두 금속 제조 기술이 뛰어났으므로 토착민들 사이에서 대장 노릇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새로운 기술은 기득권층 진입의 마스터키이다.)
아마 가야의 건국신화는 이 때 이주한 사람들이 만든 뻥이었을 것이다.
주민과 토착민들은 연맹왕국을 만들었고 중국과 활발히 교역했다. 아니 위만조선과 거래하고, 위만조선이 중국과 다시 거래했다.
이 연맹체를 '변한'으로 기록하고 있다.
조금 더 가서 경상도까지 진출한 이주민들도 있었다. 그들도 금속 제조 기술을 무기로 박혁거세 신화를 만드는 데 참여했다.
이 분들도 위만조선에게 열심히 수수료 떼이면서 중국과 거래했다.
이 연맹체를 '진한'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럼 우리 '쭌'이 한왕으로 경력채용된 원래 한(韓)은?
이 때부터 원래 한(韓)을 '마한'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삼한의 Body로써, 한반도 이남의 실질적 주인이었다.
변한이나 진한은 변두리, 촌뜨기, 또는 아싸
마한은 인싸, 메인, 중심세력
마한, 변한, 진한은 중국 사료에 '예맥이 세운 진(辰)나라'로 기록하고 있다.
위만 조선만 없다면 중국이 직접 거래하고 싶었던 애들이 바로 마한, 진한, 변한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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