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 사회에서는 모름지기 왕이 있어야 했다.
그리스와 로마에서 왕이 없는 정치를 시도해보았지만 결론은 언제나 왕이 있어야 한다로 모아졌다.
여러 국가들의 역사를 보건대 강력한 왕권이 있었을 때, 나라는 안정되고 백성들은 살만했다.
청동기 시대를 지나면서 씨족사회는 부족사회인 군장국가로 발전했다.
같은 조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씨족 사회를 이루며 살다가 농경지의 규모가 커지고 직업이 다양해짐에 따라 여러 씨족이 모여사는 부족으로 발전한 것이다.
예전에는 이 부족사회를 부족국가로 명칭했으나 유럽의 도시국가에 비해 없어 보인다고 군장국가 또는 성읍국가로 명칭이 바뀌었다.
씨족사회에서 부락단위의 부족국가 아닌 군장국가로 발전하는 데 가장 크게 작용하는 원동력은 경제활동의 변화이다.
벼농사를 포함해서 농경산업이 본격화되고 직업이 다양해지면서 여러 씨족이 모여 더욱 많은 사람이 모여 살게 되고, 마을의 크기만 커진 것이 아니라 강력한 지도자는 여러 마을을 다스리는 권력 집중 현상도 일어났다.
그렇게 권력자였던 족장은 더욱 강력한 군장이 되었고, 많은 사람을 동원해 고인돌을 만들었다.
마한만 해도 54개 넘는 이 집단을 국가로 부르는 것이 합당한가에 대한 논란은 무의미하다. 중국이 국가이면 그들과 거래하는 한반도의 사회집단 또한 국가이다. 사이즈가 작을 뿐이다.
이것은 단군왕검부터 중국을 향해 날리는 빅엿의 일관된 패턴이다.
군장국가들은 농경이 더욱 발달하고 목축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싸워서 빼앗는 것보다 무역하는 것이 훨씬 안정되고 좋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맨큐의 경제학을 읽지 않았어도 그들은 자신들만의 특산물을 비싸게 팔거나 원하는 물건과 맞교환할 줄 알았다.
무역의 대상은 점차 확대되어 이웃 군장국가 뿐만 아니라 한군현(낙랑군)과도, 또 가끔은 저 멀리 중국본토와도 무역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중국의 삼국지 '동이전'에는 거래 상대였던 한반도 군장 국가 이름들이 잔뜩 씌여 있다.
그러다보니 군장국가끼리 연맹을 맺어 대표를 내세웠다.
건국신화들을 보건대 연맹의 대표는 신망아 두텁고, 뭇 연맹 회원국들의 기대를 충족시킬만큼 능력이 있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또는 싸움 기술이 겁나 좋아서 상대를 윽박지르며 무역할 수 있는 자가 선출되기도 하였다.
그 대표의 호칭은 고민없이 '왕'이어야 했다. 무역의 상대가 왕국이니 군장국가들의 연맹체도 왕이 있어야 했다.
국력의 차이는 오로지 '왕'이 있고 없고의 차이처럼 여겨졌고, 연맹의 군장 국가들은 하나같이 외쳤다.
우리도 왕이 있어야 하겠나이다!
왕이 회원국들의 기대에 못미치면 여지없이 잘렸다. 가끔은 진짜 목이 잘리기도 하였다.
한반도에는 부여, 고구려, 마한, 진한, 변한 등 많은 군장국가 연맹체들이 형성되었다.
왕들은 연맹국 회원 군장들에게 아주 멋진 제안을 했다.
군대를 모아서 자기에게 주면 넓디 넓은 땅을 빼앗아서 많은 노비와 함게 주겠다고,
드디어 정복활동의 시작이다.
연맹체의 군장들은 앞다투어 왕에게 식량과 군사를 지원했다.
왕이 앞장 서서 승리한 전쟁의 전리품을 나누는 것은 언제나 꿀맛이었다.
그러다보니 언제부터인가 왕에게 함부로 개기지 못하게 되었다.
거듭된 정복활동으로 싸움 실력이 일단 넘사벽이 되었고, 빌려준 군사들도 이제 군장의 말보다 왕의 말을 더 따른다.
정복활동 실적이 좋은 왕은 많은 군장들을 무릎 꿇게 했다.
그들은 귀족이라고 불리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왕들은 각각의 군장국가들이 섬기던 동물 신들(토테미즘)을 부정하고 신식 종교인 불교를 강요했다.
종교와 사상을 독점하면 지배력은 한층 더 강화된다.
게다가 불교는 윤회사상이라는 아주 멋진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전생에 쌓은 업 때문에 이생의 삶이 고달프기도 하고, 영화롭기도 한다는 멋진 논리다.
왕이 모든 풍요와 권력을 독식하는 것은 전생에 아주 착하게 살았기 때문이고, 하층민일수록 전생의 잘못을 반성하며 왕의 명령에 굴복해야 한다.
다음 생에는 혹시 왕자로 태어날지 모르니까. (이 종교를 만든 사람은 천재가 맞다.)
왕의 권위는 '율령'의 반포로 한단계 업그레이드된다.
율령은 모두가 지켜야 한다. 율령을 만드는 사람은 왕이다.
결국 모든 사람은 왕이 만든 법과 왕의 명령을 지켜야 한다. 주권은 왕에게 귀속된다.
이렇게 되면 왕위를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지 못하고, 오직 자신이 낳은 아들에게만 물려줄 수 있다. 다른 놈 주면 멸족을 당할 수도 있다.
왕의 권력이 사회 구성원 모두의 힘을 합친 것보다 클 때, 연맹국가는 고대왕국으로 거듭난다.
고구려와 백제, 신라는 그렇게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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